요즘 기업들은 AI 교육 예산을 늘리면서, 신입 채용을 줄이거나 미루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AI로 인당 생산성이 올라가고 있다. 조만간 에이전트 AI가 고도화되면 실제 업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비용은 줄고, 당분간 성과도 나온다.
문제는 이 두 결정이 서로를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툴은 경험 위에서만 상상력이 된다
몇 년 전, 나는 테슬라의 제조 혁신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공개된 자료는 많지 않았다. 단편적인 사례들, 몇 개의 인터뷰 코멘트, 행간을 읽어야 하는 뉴스들. 그 파편들을 보고 “이 시스템은 아마 이렇게 생겼을 거야, 우리 관점에서 해석하면 이런 모습일 거야”라고 재구성해낸 것이 SDM(소프트웨어 정의 제조)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분석이 가능했던 것은 정보와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다른 그룹에서 DX를 오랫동안 리드했던 시니어 연구자, 자동차 산업의 구매와 개발 현장을 수십 년간 경험한 시니어 직원이 함께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 파편들은 그냥 파편으로 남았을 것이다.
AI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AI 구현 사례를 보고 “우리 맥락에서는 이렇게 쓸 수 있겠다”는 상상은, AI 툴을 다룰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이 많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아는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경험 없이 정보와 지식만 있으면 모방이 나온다.
신입을 안 뽑으면 경험도 안 쌓인다
신입사원을 줄이는 것은 당장 티가 나지 않는다. 시니어들은 여전히 있고, AI 툴도 있고, 성과도 나온다. 조직은 멀쩡해 보인다.
그런데 경험은 전수되지 않는다.
지금 조직에서 AI 툴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지, 고객이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몸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그 경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신입으로 들어와 수년간 부딪히면서 쌓이는 것이다.
신입 채용을 줄이는 순간, 기업은 경험의 축적 사이클을 끊는 것이다. 5년 후, 10년 후 그 조직의 AI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가. AI 교육 투자가 아무리 늘어도, 그 툴 앞에 앉을 경험의 밀도가 줄어들면 투자는 모방 능력 훈련으로 전락한다.
커리큘럼보다 강한 것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 AI CEO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자산은 커리큘럼이 아니다. 함께 앉아 있는 대표들과 시니어 경영자들의 경험이다. 같은 AI 툴 이야기를 들어도, 각자의 산업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상상력이 나온다. 그 충돌과 교차가 진짜 학습이다.
AI 시대에 기업이 정말 키워야 할 자산은 툴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다. 툴 앞에 앉을 경험의 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