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는 있는데, 최고경영이 없다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49·50장 — 게오르크 지멘스와 도이체방크 / 최고경영진의 과업
들어가며
우리는 스타 CEO들을 부러워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그들의 이름이 거론되면 항상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왜 한국에서는 저런 CEO가 나오지 않는가. 우리는 인재가 부족하다고 자책하고, 더러는 교육을 탓한다. 우리 교육이 기업가적 리더의 탄생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의 자체가 우리의 전제를 드러낸다. 우리는 CEO라는 개인의 역량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최고경영이라는 과업이 먼저 있고 그 일을 할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능한 CEO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미국의 일류 기업처럼 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 일류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CEO를 모셔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한 CEO를 모셔와도, 한국 기업에서 그들이 성공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번 49·50장은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최고경영은 누가 그 자리에 앉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로 정의되는 과업이라는 것이다.
드러커가 말하는 최고경영
49장에서 드러커는 독일의 위대한 금융 기업가 게오르크 지멘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870년, 작고 자본이 빈약했던 신생 은행 도이체방크는 경험 있는 은행가를 구하지 못해,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서른 살의 무명 법률가 지멘스에게 경영을 맡겼다. 그는 10년 만에 독일 최고의 금융기관을 만들었다.
지멘스가 한 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경영진’이라는 기관을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은행의 핵심 활동과 핵심 관계를 분석해 각각을 팀의 한 사람에게 책임으로 배정했다. 누가 무엇을 맡을지는 직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향과 역량, 업무량에 따라 정했다. 드러커가 이 사례에서 끌어낸 결론은 분명하다. 최고경영이 최고경영인 이유는 그것이 ‘윗자리’여서가 아니라, 사업 전체를 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50장에서 드러커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다른 모든 조직은 하나의 특정 과업을 위해 설계되지만, 최고경영만은 예외다. “최고경영 과업(the task)은 없다. 최고경영 과업들(tasks)만 있다.” 사명을 정의하는 일, 기준과 가치를 세우는 양심의 일, 내일의 경영진을 키우는 일, 핵심 외부 관계를 맺는 일, 의례적 기능, 위기에 대비하는 일. 이 여러 일이 모두 최고경영의 몫이다.
그리고 드러커는 통념 하나를 정면으로 깬다. 흔히 “CEO의 과업은 그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자가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중력 법칙이 달라지지 않듯, 최고경영 업무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개인의 스타일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문제다. 과업이 먼저 있고, 사람은 그 과업에 맞춰진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이 순서가 거꾸로다.
‘유능한 CEO’를 찾을 뿐, ‘최고경영’을 묻지 않는다
어떤 회사에 유능한 CEO가 있다면 그 기업의 최고경영도 잘 되고 있으리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강독회에서 한 토론자가 이 전제를 흔들었다. CEO의 존재와 최고경영의 존재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 대기업의 그룹 계열사와 주요 사업부 대표들이 모인 경영 회의체에 참석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다 할 최고경영 차원의 논의나 의사결정을 보지 못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자기 사업의 운영 상황을 공유할 뿐이었다. 누구도 다른 계열사나 본부의 발표에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계열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정작 최고경영은 논의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기업에서는 과업이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하는 일이 곧 최고경영의 과업이 되어버린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먼저 정의하고 적임자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익숙하게 해오던 일이 그 회사의 최고경영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드러커가 헛소리라고 부른 바로 그 통념이다. 최고경영은 그 자리에 앉은 사람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가 해야 할 일로 정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구조다.
모셔온 유능한 CEO가 실패하는 이유
처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외국 일류 기업에서 검증된 CEO를 데려와도 왜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가.
문제는 그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최고경영을 할 여유도 구조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 CEO에게 최고경영자의 업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설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구조적으로도 그럴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최고경영자는 운영 업무에 매여 있다. 빨리 성과를 내야 하고, 자기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회사를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그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에 매몰되고, 정작 최고경영의 일은 다음으로 밀린다.
이것은 50장의 진단과 정확히 맞물린다. 드러커는 최고경영 과업이 반복되지만(recurrent) 연속적이지(continuous) 않다고 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최고경영자가 눈앞의 운영 업무로 하루를 채우고, ‘필요할 때 하면 되는’ 최고경영의 일은 영영 오지 않는 내일로 미뤄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정직한 반문이 나온다. “회사는 지금도 잘 돌아간다. 그런데 왜 지금 이 고민을 해야 하는가.” 한 토론자의 답이 이 질문을 다시 세웠다. ‘잘 되고 있다’는 것과 ‘최고경영의 과업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의 성과는 지금의 운영이 만든다. 그러나 3년 뒤, 5년 뒤의 생존은 오늘 누군가가 최고경영의 일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최고경영자는 운영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십세기폭스 한국 대표로 있을 때, 나는 최고경영자의 업무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현업을 돕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이 하는 일에서 빈 공간을 찾아 빠르게 메우고, 막힌 곳에 필요한 자원을 대주어 조직이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이라고 믿었다.
드러커가 말하려는 것은 운영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최고경영은 여유가 있을 때 운영 업무 위에 얹는 부가 업무가 아니라, 그 자체가 본질이고 핵심이라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기준이 있다. 남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최고경영의 일이 아니다.
내가 폭스에서 했던 빈칸 메우기는 다른 누군가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좋은 관리자의 일이었지, 최고경영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직원들이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그들은 점점 자기 업무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관리자로서 메워야 할 틈이 줄어들자, 나는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에 빠졌다.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비워두고 있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결국 구조의 문제다
한 경영학 교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드러커가 꼽은 과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명 정의와 양심 기능이, 한국 기업의 현실에서 정말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정직하고 중요한 질문이다. 많은 한국 경영자가 같은 의문을 품는다. 최고경영의 과업을 ‘여유가 생기면 하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드러커의 답은 반대다. 그것이 본질이다. 그리고 이것은 누가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알아도 그렇게 할 여유와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한국의 경영자들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 CEO들이 최고경영에 취약한 것은 자질이나 역량의 문제인가. 여기서 큰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에 부임한 외국계 CEO들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왜 한국의 임원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모든 사안을 CEO에게 가져오는가. 충분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도 결정을 위로 올리는 구조에 그들은 당황한다. 아래에서 결정해 주지 않으면 CEO는 운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CEO가 운영에 매이는 것은 그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명확한 분권과 권한의 규정이 없는 구조 때문이다. 최고경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가 결정한다.
맺으며
다시 처음의 선망으로 돌아가 본다. 젠슨 황과 머스크와 나델라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다만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다시 물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젠슨 황이라는 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가 최고경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그 회사의 구조인가. 당신 회사의 최고경영 과업은 지금 종이 위에 정의되어 있는가, 아니면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습관으로 정의되고 있는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독서 토론 모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