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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 — 통제로 묶을 것인가, 시스템으로 통합할 것인가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47장. 관계 중심 설계 : 시스템 구조

들어가며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50년간 수십 개의 Tier 1 공급사들과 협업하며 글로벌 톱 3에 올랐다. 이제 기존 공급사들에 더해 새로운 유형의 협력사들과 함께 자율주행과 Physical AI로 가야 한다.

나는 현대차가 운영해 온 공급망 구조가 개방형 생태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차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나 스스로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계약 관계 이상의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늘 의문이 남아 있었다.

드러커의 〈47장. 관계 중심 설계 : 시스템 구조〉를 읽으며 귀중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시스템 구조는 단순한 협력 관계가 아니다. 각자의 문화와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면서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어렵고 가장 비싼 조직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전환기를 맞이한 한국 대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무거운 질문이 될 것이다.

강력한 통제와 통합: 과거 공급망이 작동한 방식

드러커에 따르면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단일한 행동으로 통합해야 할 때” 시스템 구조가 필요하다. 각 구성원(혹은 하부 조직)이 자기 방식대로, 자기 논리에 따라, 자기가 수용하는 행동 규범에 따라 움직인다. 동시에 모든 구성원은 공동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사례들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NASA는 군인 문화, 독일 과학자 집단, 대형 민간기업, 대학 연구자를 하나로 묶었다. 이들을 소유하거나 단순 계약으로 묶으면 각자의 방식대로 탁월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원대한 하나의 목표였다 — “Get a man on the moon by 1970.”

현대차그룹도 수백개의 1차 공급사들과 함께 글로벌 Top 3라는 위대한 목표를 달성했다. 그 운영 방식은 매우 구체적이다. 공급사들은 기술 개발과 인프라에 투자한다. 현대차는 보상으로 공급사에게 향후 몇 년간의 매출 물량을 보증한다. 이런 약속은 거의 모든 부품군에서 반복되는 표준적인 풍경이다.

이것은 드러커가 말한 시스템 구조라기보다는, 계약 기반의 공급망 관리에 가깝다. 현대차와 공급사들 대부분이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제조업의 DNA, 원가 절감의 논리, 품질과 납기의 언어. 서로 다른 문화를 통합할 필요가 없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역할만 나누면 됐다.

이 구조가 잘 작동했던 것은, 당시의 문제가 그 수준의 해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융합의 시대, 시스템 구조가 필요한 이유

지금 자동차 산업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 앞에 서 있다. 전동화, AI, 로보틱스, 문화 콘텐츠, 금융 상품까지 다양한 산업이 하나의 모빌리티 생태계로 수렴하고 있다. 이 각 산업은 서로 매우 다른 문화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드러커가 시스템 구조를 필요로 하는 조건으로 정확히 이것을 지목했다. 각 구성원이 자기 방식대로, 자기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효과적이다. 그런데 동시에 모든 구성원이 공동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요구될 때, 시스템 구조 외에는 답이 없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문화를 제조업의 방식으로 통제하면, 그 기업이 가진 탁월함은 사라진다. AI 스타트업을 기존 공급망 논리로 묶으면, 그것이 가진 속도와 창의성은 질식한다. 각자의 문화와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면서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이것이 시스템 구조가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여기에 시스템 구조의 가장 어려운 진실이 있다. 드러커는 이 구조를 단 한 번도 찬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끔찍하게 어렵다(fiendishly difficult)“고 표현했다. 더 단순한 구조로 풀 수 있는 일에는 절대로 쓰지 말라고 못 박았다. 시스템 구조는 다른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마지막에 선택하는 구조다.

가장 어려운 숙제: 충분히 크고 구체적인 공동 목표

드러커는 시스템 구조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목표의 명확성을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NASA의 목표 — “Get a man on the moon by 1970”가 대표적 사례이다. 충분히 크고, 충분히 구체적이어서 각 구성원이 그 목표에서 자신의 역할을 역산할 수 있는 목표.

여기서 현실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과거 공급망은 이런 목표를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글로벌 톱5”, “연간 몇 만 대 물량”. 정량적이고 계약서에 담을 수 있는 목표였다. 협력사는 그 숫자를 보고 5년치 설비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모빌리티 기업이 된다는 비전”은 어떻게 계약서에 담는가. 자율주행과 Physical AI의 구현이라는 목표는 어떻게 충분히 구체화해 협력사가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가.

본사 스스로도 방향이 계속 흔들린다. 협력사들은 현대차가 수소차를 얼마나 만들 계획인지, 로보택시가 곧 출시될지 묻는다. 이 방향이 명확해야 어느 정도 투자를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공급사들은 여전히 대기업이 정량적 목표를 제시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목표는 더 이상 정량적으로만 만들어질 수 없다.

측정 가능성과 거대함을 동시에 갖춘 새로운 형태의 목표를 만드는 작업, 이것이 우리 경영자에게 남겨진 가장 어려운 숙제다.

맺음말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두 가지다.

당신의 회사가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의 문화와 가치를, 통제하려 하는가, 통합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통합을 위해, 당신은 충분히 크고 구체적인 공동 목표를 만들어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시스템 구조는 아직 이르다. 그리고 더 단순한 구조로 풀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