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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장 — 분권화할수록 중앙이 강해진다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46. 결과 중심 설계 : 연방제 분권 조직과 의사 분권 조직

들어가며

함께 일했던 부사장님이 있었다. 보고서에 “최고경영진(회장님) 지시사항”이라는 문구를 넣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분이었다.

대기업 조직에서 이것은 상식에 반하는 태도였다. 어느 부서든 자기 일을 최고경영진의 아젠다로 만들고 싶어 했다. 보고서 첫 줄에 “회장님 말씀”을 넣으면 그 일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게 내가 경험해 온 대기업의 논리였다. 그 부사장님의 지론은 달랐다. “모든 일에 회장님을 끌어들이면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언듯 무슨 뜻인지 이해는 가지만, 온전히 따르기는 쉽지 않았다. 임원으로 살아남으려면 눈에 띄는 일을 해야 한다. 눈에 띄는 일을 하려면 최고경영진 아젠다로 만들어야 한다. 부사장님의 철학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철학을 지키면서 대기업 임원으로 생존할 수 있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나는 그 사이에서 늘 불편했다. 옳은 건지 그른 건지 판단을 유보한 채, 상황에 따라 적절한 입장을 취했다.

이 챕터(46장)는 내가 불편해하던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주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회장님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일이 안 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연방적 분권화*‘이란 무엇인가

* Federal Decentralization — 번역서에서는 연방제 분권 구조라고 기술했으나, 맥락상 연방적 분권화가 더 적합하다.

1920년대 GM을 떠올려보자. 당시 GM에는 쉐보레,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이 있었다. 이것들은 단순히 다른 이름의 자동차 라인이 아니었다. 각각 다른 소득 계층을 타깃으로 하는 독립적인 사업체였다. 쉐보레는 대중 시장을, 캐딜락은 최상위 시장을 담당했다. 각자의 시장이 있었고, 각자의 손익이 있었고, 각자의 경영진이 있었다.

이것이 드러커가 말하는 연방적 분권화이다.

대부분 조직의 구조는 “일”에서 출발한다. 마케팅 부서, 개발 부서, 재무 부서처럼 기능별로 사람을 모아놓고, 일이 부서 사이를 이동한다. 연방적 분권화는 출발점이 다르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무엇인가”에서 시작한다. 결과를 먼저 정의하고,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단위를 만든다.

드러커는 이 단위를 비즈니스(business)라고 불렀다. 그리고 하나의 회사(company)가 여러 비즈니스로 구성될 수 있을 때만 연방적 분권화가 작동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비즈니스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시장, 그리고 실질적인 손익 책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분권화가 아니다.

분권화할수록 중앙이 강해진다

연방적 분권화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 권한을 아래로 내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분권화를 중앙의 약화로 읽는다.

드러커는 정반대라고 말한다.

GM의 슬론은 당시 회사를 더 강하게 중앙집권화할 수 있었다. 당시 사내에도 그런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슬론은 강한 신념으로 분권화를 고집했다. “분권화야말로 사람들의 자율성과 자발적 참여를 극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역설적으로, 분권화할수록 중앙이 더 강해졌다. 각 사업부가 자기 시장을 책임지게 되자, 최고경영진은 운영 업무에서 해방됐다. 쉐보레의 판매 실적을 챙기는 대신, GM 전체의 방향과 전략을 설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드러커는 경영의 과업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운영, 혁신, 그리고 최고경영. 이 세 가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직에서 최고경영진은 운영을 총지휘하는 것으로 하루를 다 보낸다. 정작 최고경영진만이 할 수 있는 일 — 우리 사업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 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분권화의 목적은 권한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최고경영진이 비로소 최고경영의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한국 재벌은 연방제가 아니다

삼성, 현대, SK, LG를 보면 언뜻 연방적 분권화처럼 보인다. 지주사가 있고, 계열사마다 CEO가 있고, 별도의 손익이 잡힌다. 조직도만 보면 GM과 비슷하다.

그러나 드러커의 조건에 대입해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그는 최고경영진이 직접 결정해야 할 영역을 세 가지로 못 박았다 — 사업 진입과 철수, 자본 배분, 핵심 인사. 이 외의 모든 결정은 각 사업부에 넘긴다. 그래야 계열사가 진정한 비즈니스로 작동할 수 있다.

한국 재벌에서는 최고경영진의 결정 영역이 이 세 가지를 훨씬 넘는다. 오너의 일상적 경영 개입, 계열사 간 내부 거래 강제, 신사업 기회의 오너 배분, 그룹 차원의 브랜드·이미지 통제까지. 계열사 CEO는 실질적 경영자가 아니라 오너의 대리인에 가깝다. 시장이 아니라 오너가 각 사업의 생사를 결정한다.

내가 경험한 현장은 이랬다. 무슨 일을 하려면 어떻게든 회장님 뜻대로 만들어야 진행이 됐다. 회장님께 이 일의 중요성을 알려드리는 것 자체가 일의 절반이었다. 보고서는 내용보다 회장님이 어떻게 읽으실지를 먼저 고려해서 썼다. 그것이 대기업 임원의 현실이었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구조 안에서 회장님도 망가진다. 세부 운영까지 참여해야 본인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모든 것이 회장님 승인으로 몰리면, 회장님은 정작 회장님만이 할 수 있는 일 — 우리 사업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10년 후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을 생각할 시간을 잃는다.

오너의 손이 닿는 영역이 지나치게 넓으면 계열사 자율성이 무너지고, 자율성이 무너지면 오너가 운영에 개입하게 되고, 오너가 운영에 개입하면 정작 최고경영 과업에 집중할 여력이 사라진다. 악순환이다.

그럼에도 왜 해야 하는가

연방적 분권화는 구현과 운영이 매우 어렵다. GM의 연방제도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여러 회사를 M&A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슬론은 이 우연한 구조를 해체하는 대신 정교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오늘날 분권 조직을 갖춘 대부분의 기업도 M&A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기아의 경우도 그렇다. 완전 합병이 아닌 독립 법인 상태에서 총괄본부를 통해 연방제의 요소를 차용하는 독특한 구조로 진화해왔다. 완전한 연방제는 아니지만, 그 정신을 살리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완전한 연방적 분권화가 불가능한 조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토론자의 말이 이를 잘 정리했다. “분권 조직의 강점은 경영자의 사업 경영 범위와 책임이 가장 선명하게 인식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시장이 선명하게 구분될 수 있다면, 그 형태가 무엇이든 그 정신은 구현할 수 있다.”

완전한 연방제가 아니어도 된다. 그러나 각 사업 단위의 책임자가 자기 시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그 결과로 최고경영진이 운영에서 해방되어 진짜 경영을 할 수 있는 구조 — 이 정신만큼은 구현해야 한다.

AI 시대는 이 필요성을 더 선명하게 만들 것이다. 개인의 역량이 증강될수록 구조의 마찰 비용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회장님 아젠다로 만드는 데 쓰는 에너지, 오너 승인을 기다리는 시간, 내부 거래 구조를 유지하는 비용 — 이것들이 더 이상 묻히지 않는다. 구조의 비용이 성과의 차이로 직접 드러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맺으며

드러커는 조직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의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 그가 이 말을 썼을 때 한국 재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장은 지금 이 순간 가장 현실적인 경영 원칙으로 들린다.

회장님을 끌어들여야 일이 되는 구조는 회장님의 에너지도, 임원들의 에너지도 해방시키지 못한다. 모두가 승인을 기다리고, 모두가 눈치를 보고,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면서 전체는 비합리적으로 굴러간다.

그 부사장님이 완전히 옳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대기업 임원으로 살아남으려면 그 논리를 따라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드러커가 묻는 질문은 다르다. 오너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당신이 세부 운영에서 손을 놓을수록,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경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분권화할수록 최고경영이 강해진다.”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독서 토론 모임에서